80대 배우 이순재의 오랫동안 사랑 받으며 일하는 법
- 작성일2020/11/30 15:50
- 조회 1,957
[김호이의 사람들] 80대 배우 이순재의 오랫동안 사랑 받으며 일하는 법
20대에 데뷔해 80세가 넘은 나이까지 60년 넘게 현역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우 이순재.
대학교 3학년이던 1956년 연극무대에 오르며 연기자의 꿈을 실현한 이후 1991년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아버지 역할을 맡아
최고 시청률 64%를 기록하는 데 일조했다. 2013년에는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가족 몰래 야동을 보다 들키는 장면으로
‘야동순재’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요즘엔 '꽃할배'로도 통한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배우 이순재와 만나 오랫동안 사랑 받으며 일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김호이 기자/ 배우 이순재]
Q. 100세 시대에 오래 일하는 건 모든 사람들의 꿈입니다. 60년 넘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하셨나요?
A. 그동안 오로지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부족한 걸 연습을 통해 채워나가면서 살아왔어요. 예술 창작과 관련된 직업에는 정년이 없이
본인의 능력과 조건이 따르면 언제든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거지, 직장처럼 정년이 있으면 벌써 끝났을 것으로 생각해요.
Q. 장수하는 배우의 비결이 있나요?
A. 건강이 제일 중요해요. 아무리 능력이 있고 인기가 있어도 건강하지 못하면 연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해야 돼요. 배우는 암기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기관리를 꾸준히 해야 되고요.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연기를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모든 과제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고, 새로운 걸 만들겠다는 의욕이 있어야 돼요.
과거에 잘됐던 걸 가지고 우려먹는 연기로는 오래 지속할 수 없어요. 연기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역량을 개발해야 지속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활동을 하는 나이 많은 배우들은 인기가 있다고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자기 역량을 개발해서 남아 있는 거예요.
Q.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A. 80년대 언론 통폐합 이전에는 동양방송TBC(현 JTBC)에 있으면서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 각광을 받았죠. 통폐합 이후에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허준’을 할 때가 전성기였죠.
Q. 배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A. 우리가 대학생 때는 여가생활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넉넉하지 못했어요. 돈을 모아서 영화보는 정도였거든요.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영화가 많았는데 그걸 보는 게 취미였어요.
좋은 작품과 배우들을 보면서 작품의 예술성을 발견했어요. 근데 그때는 사회적으로 배우라는 직업 인식이 안 좋았어요. ‘딴따라’라고 불렀거든요.
그렇지만 배우라는 직업이 상당히 창조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이 일을 시작했죠. 이제 시대가 변하면서 이 분야는 세계화가 됐어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통해 증명이 됐고요. 이제는 젊은이들이 다 동경하고 권장하는 직종이지만 우리 때는 90%가 반대하는 직종이었어요.
Q. 배우를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때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A. 좋은 작품을 맡아서 연기를 할 때가 제일 즐겁죠. 배우는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게 행운이에요. 좋은 작품이란 질과 양적으로 깊이가 있고 관객을 감동시키면서
재밌는 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서 몇 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좋아해요. 그만큼 역사성과 변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거침없이 하이킥’은 재밌고 코믹한 장르인데, 걸작 중에서도 걸작이에요. 그때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재방송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젊을 때는 힘들기도 했어요. 그땐 지금처럼 CF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수익성이 낮았어요. 오로지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출연료로 먹고 살았거든요.
그래서 한두 편 가지고는 안됐어요. 나 같은 경우에는 신혼 초에도 20일 이상을 촬영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갔어요. 그렇게 살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자유로움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A. 연기할 때가 제일 자유롭죠. 무대 위에 올라가면 누가 제약 안하잖아요. 자기가 마음껏 창조 행위를 할 수 있는 곳이 무대예요.
Q. 60년 넘게 일을 하셨어도 실수를 하시나요?
A. 하죠, 관객은 모르더라도 본인은 알아요. 그런 실수를 관객이 박수치고 열광했다고 해서 넘어가고 반복하면 안돼요. 아무리 관객이 잘했다고 상을 주더라도
내 실수를 스스로 인식하고 보완해야 돼요. 반성하고 보완하는 게 배우의 역할이에요.
Q. 많은 대사들을 어떻게 외우세요?
A. 배우는 암기력이 전제가 되어야 해요. 의무적으로 대사를 외워야 되잖아요. 글자만 외우는 게 아니라 내용과 의미를 외우고 재현을 해야 되기 때문에
확실하고 정확하게 외우는 게 중요해요.
Q. 앞으로 배우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할까요?
A. 배우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연기 완성도예요. 돈은 못 벌고 인기가 없더라도 연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건강이 되면 끝까지 가요.
근데 돈 벌고 인기만 믿고 자기개발을 안하면 어느 시점에 끝날 수밖에 없어요. 주연했다가 조연을 하고, 젊은 역할을 했다가 노인 역할을 하려면
감당할 만한 준비가 되어야 해요. 옛날에는 밥을 먹기 위해 연기를 했다면 요즘에는 꾸준하게 열심히 하면 돈은 못 벌어도 밥은 먹을 수 있어요.
송강호나 최민식은 잘생기지 않았잖아요. 한번에 뜨지도 않았고요. 꾸준히 달리면서 자기 영역을 완성했거든요. 이런 사람들이 오래갈 수 있어요.
Q. 잘생긴 것보다는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A. 지금은 개성의 시대예요. 요즘에는 잘생긴 사람보다 잘생기지 않은 사람들이 더 뜨잖아요. 예를 들어 마동석이 잘생겼어요? 연기력과 기본이 되어 있으니까
자신의 몫을 다하는 거죠. 요즘 젊은이들은 체질과 용모, 머리가 달라졌기 때문에 미남 미녀는 많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좋은 연기를 해나는 게 중요해요. 작업을 같이 하다보면 제대로 열심히 하고 지금보다는 내일을 위해서 노력하는 젊은 배우들이 눈에 띄는 이유예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연기를 통해 최종적으로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은가요?
A. 특별히 이루고 싶은 건 없어요. 그냥 꾸준히 하는 것뿐이죠. 나한테 과제가 들어오는 걸 제대로 연습해서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노력의 연속이에요.
모든 예술적 창조 작업은 하다가 끝나는 거예요. 무한한 사고력을 가지고 얼마든지 예술적 창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선배들이 한 것들을 참고는 할 수 있지만
그걸 흉내내서는 안돼요. 이 분야는 끝이 없어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세계화가 될 수 있는 시대예요.
Q.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엔 직접적인 평가가 따를 수밖에 없어요. 좋은 평가를 받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죠. 나쁜 평가를 받으면 기분이 나쁘지만 거기에 연연하면 안돼요.
우리는 관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비평가의 평가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누군가의 평가를 받기 전에 자기반성을 우선시 해야 해요. 아무리 박수를 치거나 욕을 하더라도 잘못한 건 인정하고, 자기가 보완해나가면 되는 거예요.
드라마를 해서 뜬 건 시작에 불과해요. 더 열심히 해서 완성도를 높이고 노력하는 배우는 올라가는데, 잠깐 뜬 인기 때문에 거기에 연연해서 우쭐거리면 거기서 끝나는 거예요.
잘했을 때는 더 나아가고 못했으면 보완하면 되는 거예요.
[사진= 김호이 기자/ 2010년 서울대학교에서 진행된 배우 이순재 강연 내용을 담은 책]
Q. '거침없이 하이킥'을 언급하셨는데, 시대에 따라서 웃음요소도 변하지 않나요?
A. 당연하죠. 시대에 따라서 감각, 문화들은 달라지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예요. 재밌는 걸 볼 때 웃긴 건 10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잖아요.
역사와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서 전파되는 거예요. 좋은 작품은 시대를 넘어서 늘 사랑받아요. 그런 의미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은 한참 후에 봐도 좋을 거예요.
그리고 ‘허준’과 ‘이산’도 정말 잘 만들었어요. 내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그 당시 연출자와 작가, 배우의 정통연기와 작품성이 뛰어나서 지금 봐도 무게감과 표정의 생생함이 느껴져요. 젊은 친구들이 그런 걸 보고 배우면서 자기 걸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Q. 교수로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계십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시나요?
A. 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가르쳐요. 학생들에게 연기의 기본을 철저하게 훈련시키고, 직접 학생들과 작품을 만들어요. 한 작품을 한 학기동안 연습해서 막을 올려요.
Q. 정치도 하셨습니다. 연기보다 쉬웠나요, 어려웠나요?
A. 어렵죠, 연기라는 건 우리끼리 정한 대본대로 하는 거예요. 정치는 지역의 생활과 조건을 다루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여해야 하는데 이건 엄청난 과제예요.
그래서 정치를 잘하는 건 최고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어요. 정치로 인해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행복권이 달라지거든요. 모두들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약을 하잖아요. 정치라는 건 자기 희생을 해야 돼요. 정치를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을 하려면 본인과 가족의 행복을 포기해야 된다는 걸 느꼈거든요.
근데 연기는 행복을 포기할 필요가 없잖아요.
Q. 어떻게 면목동에서 정치를 하게 됐나요?
A. 완전 내버린 동네였어요.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 정치하라고 할 정도였거든요. 3당 합당까지 했는데 공천 희망자가 한 명도 없었고요. 내가 정치를 하려면 진작 했지
이제 할 사람이 아니에요. 정치로 평생 먹고 살 생각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러더니 송파 쪽에서 해보라고 권유하더라고요. 근데 안한다고 완강하게 거부했어요.
제주도 서귀포에서 촬영을 하는데 공천 발표가 나왔어요, 그러더니 신설 구인 중랑 갑이 됐어요. 아무도 안하는 바람에 떨어져도 좋으니까 자리나 채우라고 했었거든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Q. 어떤 경험들이 연기를 할 때 가장 큰 도움이 됐나요?
A. 작품에 대한 이해력이 있어야 하고 역사를 알아야 해요. 카리스마만 있는 것과 뒷배경을 알고 연기를 하는 건 차원이 달라요.
내가 실수를 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지체될 수밖에 없어요. 남이 잘 때 난 대본을 보고 연습해야 해요. 그리고 일상 속에서 여러 가지 유형들을 보고
연기의 테마를 생각해야 인물 선택의 안목이 높아지고, 자기가 맡은 인물과 비슷한 게 보여요. 그걸 자기 걸로 만들면 되는 거예요.
Q. 배우 이순재에게 남았으면 하는 수식어가 있나요?
A. 열심히 한 배우로 남고 싶어요. 저는 상을 별로 못 받은 배우 중 한 명이에요. 우리 때는 상을 받으려면 비즈니스가 껴야 되는데 그렇게 해서 상을 받아야 될 이유는 없잖아요.
상이라는 건 그때 내가 잘했더라도 나보다 더 잘한 사람이 있으면 못 받는 거예요. 그래서 상에 연연하지는 않았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배우 이순재가 전하는 메세지]
Q. 기나긴 인생에서 깨닫고 지키는 습관이나 룰이 있나요?
A. 한번 잘못되면 빨리 잊어버려요. 그건 지나간 거잖아요. 앞으로를 위해서 노력하면 되는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인생의 철학을 가지고 그 분야에서 꾸준하게 일을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사회에 나간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능력과 바람, 취향에 따라서 여러 가지 직업을 선택해요. 예전에는 사회에서 각광을 받고 출세했다고 생각했던 직종과
그렇지 못한 직종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모든 직종이 동등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어느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든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게 성공이에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처럼 흙수저 출신이었던 사람들 중에 그런 역사성을 가지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요.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도달하면 성공한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해서 일구어 나가야죠.
그러면 시간이 지나서 스폰서가 생겨요. 그럼 된 거지. 판검사 중에서 잘못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이제 이 시대는 우리 젊은이들이 분명한 자기 목표를 세워야 해요.
그리고 자기 자신의 능력을 알아야 되고요. 이제는 누구든지 기회가 있어요. 옛날에는 제한이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분야에서든 최선을 다하면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어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세상이 왔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자기 자신의 의미를 아는 게 중요해요.
나는 그냥 별 볼일 없는 놈, 엄마 아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태어난 놈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사회의 소모품밖에 될 수 없어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으니,
각자의 창의력과 각자의 능력을 생각해야 돼요.
[사진= 김호이 기자/ 베우 이순재와]
기사원문: https://www.ajunews.com/view/20201129165830429
20대에 데뷔해 80세가 넘은 나이까지 60년 넘게 현역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우 이순재.
대학교 3학년이던 1956년 연극무대에 오르며 연기자의 꿈을 실현한 이후 1991년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아버지 역할을 맡아
최고 시청률 64%를 기록하는 데 일조했다. 2013년에는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가족 몰래 야동을 보다 들키는 장면으로
‘야동순재’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요즘엔 '꽃할배'로도 통한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배우 이순재와 만나 오랫동안 사랑 받으며 일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김호이 기자/ 배우 이순재]
Q. 100세 시대에 오래 일하는 건 모든 사람들의 꿈입니다. 60년 넘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하셨나요?
A. 그동안 오로지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부족한 걸 연습을 통해 채워나가면서 살아왔어요. 예술 창작과 관련된 직업에는 정년이 없이
본인의 능력과 조건이 따르면 언제든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거지, 직장처럼 정년이 있으면 벌써 끝났을 것으로 생각해요.
Q. 장수하는 배우의 비결이 있나요?
A. 건강이 제일 중요해요. 아무리 능력이 있고 인기가 있어도 건강하지 못하면 연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해야 돼요. 배우는 암기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기관리를 꾸준히 해야 되고요.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연기를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모든 과제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고, 새로운 걸 만들겠다는 의욕이 있어야 돼요.
과거에 잘됐던 걸 가지고 우려먹는 연기로는 오래 지속할 수 없어요. 연기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역량을 개발해야 지속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활동을 하는 나이 많은 배우들은 인기가 있다고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자기 역량을 개발해서 남아 있는 거예요.
Q.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A. 80년대 언론 통폐합 이전에는 동양방송TBC(현 JTBC)에 있으면서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 각광을 받았죠. 통폐합 이후에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허준’을 할 때가 전성기였죠.
Q. 배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A. 우리가 대학생 때는 여가생활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넉넉하지 못했어요. 돈을 모아서 영화보는 정도였거든요.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영화가 많았는데 그걸 보는 게 취미였어요.
좋은 작품과 배우들을 보면서 작품의 예술성을 발견했어요. 근데 그때는 사회적으로 배우라는 직업 인식이 안 좋았어요. ‘딴따라’라고 불렀거든요.
그렇지만 배우라는 직업이 상당히 창조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이 일을 시작했죠. 이제 시대가 변하면서 이 분야는 세계화가 됐어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통해 증명이 됐고요. 이제는 젊은이들이 다 동경하고 권장하는 직종이지만 우리 때는 90%가 반대하는 직종이었어요.
Q. 배우를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때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A. 좋은 작품을 맡아서 연기를 할 때가 제일 즐겁죠. 배우는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게 행운이에요. 좋은 작품이란 질과 양적으로 깊이가 있고 관객을 감동시키면서
재밌는 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서 몇 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좋아해요. 그만큼 역사성과 변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거침없이 하이킥’은 재밌고 코믹한 장르인데, 걸작 중에서도 걸작이에요. 그때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재방송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젊을 때는 힘들기도 했어요. 그땐 지금처럼 CF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수익성이 낮았어요. 오로지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출연료로 먹고 살았거든요.
그래서 한두 편 가지고는 안됐어요. 나 같은 경우에는 신혼 초에도 20일 이상을 촬영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갔어요. 그렇게 살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자유로움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A. 연기할 때가 제일 자유롭죠. 무대 위에 올라가면 누가 제약 안하잖아요. 자기가 마음껏 창조 행위를 할 수 있는 곳이 무대예요.
Q. 60년 넘게 일을 하셨어도 실수를 하시나요?
A. 하죠, 관객은 모르더라도 본인은 알아요. 그런 실수를 관객이 박수치고 열광했다고 해서 넘어가고 반복하면 안돼요. 아무리 관객이 잘했다고 상을 주더라도
내 실수를 스스로 인식하고 보완해야 돼요. 반성하고 보완하는 게 배우의 역할이에요.
Q. 많은 대사들을 어떻게 외우세요?
A. 배우는 암기력이 전제가 되어야 해요. 의무적으로 대사를 외워야 되잖아요. 글자만 외우는 게 아니라 내용과 의미를 외우고 재현을 해야 되기 때문에
확실하고 정확하게 외우는 게 중요해요.
Q. 앞으로 배우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할까요?
A. 배우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연기 완성도예요. 돈은 못 벌고 인기가 없더라도 연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건강이 되면 끝까지 가요.
근데 돈 벌고 인기만 믿고 자기개발을 안하면 어느 시점에 끝날 수밖에 없어요. 주연했다가 조연을 하고, 젊은 역할을 했다가 노인 역할을 하려면
감당할 만한 준비가 되어야 해요. 옛날에는 밥을 먹기 위해 연기를 했다면 요즘에는 꾸준하게 열심히 하면 돈은 못 벌어도 밥은 먹을 수 있어요.
송강호나 최민식은 잘생기지 않았잖아요. 한번에 뜨지도 않았고요. 꾸준히 달리면서 자기 영역을 완성했거든요. 이런 사람들이 오래갈 수 있어요.
Q. 잘생긴 것보다는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A. 지금은 개성의 시대예요. 요즘에는 잘생긴 사람보다 잘생기지 않은 사람들이 더 뜨잖아요. 예를 들어 마동석이 잘생겼어요? 연기력과 기본이 되어 있으니까
자신의 몫을 다하는 거죠. 요즘 젊은이들은 체질과 용모, 머리가 달라졌기 때문에 미남 미녀는 많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좋은 연기를 해나는 게 중요해요. 작업을 같이 하다보면 제대로 열심히 하고 지금보다는 내일을 위해서 노력하는 젊은 배우들이 눈에 띄는 이유예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연기를 통해 최종적으로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은가요?
A. 특별히 이루고 싶은 건 없어요. 그냥 꾸준히 하는 것뿐이죠. 나한테 과제가 들어오는 걸 제대로 연습해서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노력의 연속이에요.
모든 예술적 창조 작업은 하다가 끝나는 거예요. 무한한 사고력을 가지고 얼마든지 예술적 창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선배들이 한 것들을 참고는 할 수 있지만
그걸 흉내내서는 안돼요. 이 분야는 끝이 없어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세계화가 될 수 있는 시대예요.
Q.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엔 직접적인 평가가 따를 수밖에 없어요. 좋은 평가를 받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죠. 나쁜 평가를 받으면 기분이 나쁘지만 거기에 연연하면 안돼요.
우리는 관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비평가의 평가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누군가의 평가를 받기 전에 자기반성을 우선시 해야 해요. 아무리 박수를 치거나 욕을 하더라도 잘못한 건 인정하고, 자기가 보완해나가면 되는 거예요.
드라마를 해서 뜬 건 시작에 불과해요. 더 열심히 해서 완성도를 높이고 노력하는 배우는 올라가는데, 잠깐 뜬 인기 때문에 거기에 연연해서 우쭐거리면 거기서 끝나는 거예요.
잘했을 때는 더 나아가고 못했으면 보완하면 되는 거예요.
[사진= 김호이 기자/ 2010년 서울대학교에서 진행된 배우 이순재 강연 내용을 담은 책]
Q. '거침없이 하이킥'을 언급하셨는데, 시대에 따라서 웃음요소도 변하지 않나요?
A. 당연하죠. 시대에 따라서 감각, 문화들은 달라지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예요. 재밌는 걸 볼 때 웃긴 건 10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잖아요.
역사와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서 전파되는 거예요. 좋은 작품은 시대를 넘어서 늘 사랑받아요. 그런 의미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은 한참 후에 봐도 좋을 거예요.
그리고 ‘허준’과 ‘이산’도 정말 잘 만들었어요. 내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그 당시 연출자와 작가, 배우의 정통연기와 작품성이 뛰어나서 지금 봐도 무게감과 표정의 생생함이 느껴져요. 젊은 친구들이 그런 걸 보고 배우면서 자기 걸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Q. 교수로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계십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시나요?
A. 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가르쳐요. 학생들에게 연기의 기본을 철저하게 훈련시키고, 직접 학생들과 작품을 만들어요. 한 작품을 한 학기동안 연습해서 막을 올려요.
Q. 정치도 하셨습니다. 연기보다 쉬웠나요, 어려웠나요?
A. 어렵죠, 연기라는 건 우리끼리 정한 대본대로 하는 거예요. 정치는 지역의 생활과 조건을 다루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여해야 하는데 이건 엄청난 과제예요.
그래서 정치를 잘하는 건 최고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어요. 정치로 인해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행복권이 달라지거든요. 모두들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약을 하잖아요. 정치라는 건 자기 희생을 해야 돼요. 정치를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을 하려면 본인과 가족의 행복을 포기해야 된다는 걸 느꼈거든요.
근데 연기는 행복을 포기할 필요가 없잖아요.
Q. 어떻게 면목동에서 정치를 하게 됐나요?
A. 완전 내버린 동네였어요.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 정치하라고 할 정도였거든요. 3당 합당까지 했는데 공천 희망자가 한 명도 없었고요. 내가 정치를 하려면 진작 했지
이제 할 사람이 아니에요. 정치로 평생 먹고 살 생각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러더니 송파 쪽에서 해보라고 권유하더라고요. 근데 안한다고 완강하게 거부했어요.
제주도 서귀포에서 촬영을 하는데 공천 발표가 나왔어요, 그러더니 신설 구인 중랑 갑이 됐어요. 아무도 안하는 바람에 떨어져도 좋으니까 자리나 채우라고 했었거든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Q. 어떤 경험들이 연기를 할 때 가장 큰 도움이 됐나요?
A. 작품에 대한 이해력이 있어야 하고 역사를 알아야 해요. 카리스마만 있는 것과 뒷배경을 알고 연기를 하는 건 차원이 달라요.
내가 실수를 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지체될 수밖에 없어요. 남이 잘 때 난 대본을 보고 연습해야 해요. 그리고 일상 속에서 여러 가지 유형들을 보고
연기의 테마를 생각해야 인물 선택의 안목이 높아지고, 자기가 맡은 인물과 비슷한 게 보여요. 그걸 자기 걸로 만들면 되는 거예요.
Q. 배우 이순재에게 남았으면 하는 수식어가 있나요?
A. 열심히 한 배우로 남고 싶어요. 저는 상을 별로 못 받은 배우 중 한 명이에요. 우리 때는 상을 받으려면 비즈니스가 껴야 되는데 그렇게 해서 상을 받아야 될 이유는 없잖아요.
상이라는 건 그때 내가 잘했더라도 나보다 더 잘한 사람이 있으면 못 받는 거예요. 그래서 상에 연연하지는 않았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배우 이순재가 전하는 메세지]
Q. 기나긴 인생에서 깨닫고 지키는 습관이나 룰이 있나요?
A. 한번 잘못되면 빨리 잊어버려요. 그건 지나간 거잖아요. 앞으로를 위해서 노력하면 되는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인생의 철학을 가지고 그 분야에서 꾸준하게 일을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사회에 나간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능력과 바람, 취향에 따라서 여러 가지 직업을 선택해요. 예전에는 사회에서 각광을 받고 출세했다고 생각했던 직종과
그렇지 못한 직종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모든 직종이 동등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어느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든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게 성공이에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처럼 흙수저 출신이었던 사람들 중에 그런 역사성을 가지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요.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도달하면 성공한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해서 일구어 나가야죠.
그러면 시간이 지나서 스폰서가 생겨요. 그럼 된 거지. 판검사 중에서 잘못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이제 이 시대는 우리 젊은이들이 분명한 자기 목표를 세워야 해요.
그리고 자기 자신의 능력을 알아야 되고요. 이제는 누구든지 기회가 있어요. 옛날에는 제한이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분야에서든 최선을 다하면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어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세상이 왔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자기 자신의 의미를 아는 게 중요해요.
나는 그냥 별 볼일 없는 놈, 엄마 아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태어난 놈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사회의 소모품밖에 될 수 없어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으니,
각자의 창의력과 각자의 능력을 생각해야 돼요.
[사진= 김호이 기자/ 베우 이순재와]
기사원문: https://www.ajunews.com/view/2020112916583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