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 남자독백
  • 작성일2020/01/0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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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목]

네가 공항에서 찾은 건 공범이 아니야. 넌 국제선 출국장으로 곧장 갔어, 네 여권까지 챙겨서.
그런데도 출국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지. 범행을 저지르고 이 나라를 뜨는 게 목적이었다면,
일단 아무 노선이나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게 맞아. 그런데 계속 누군가를 찾고 있었단 말이야.
그 만나기로 한 사람이 공범이었다면 전화를 했거나 만날 약속을 미리 했겠지, 여기저기 헤맬 필요 없이.
네가 체포되던 그 날 그 시각에 공항에 누군가 또 있었던 거야. 넌 그놈 잡으러 간 거고, 도망치려고가 아니라.
출국장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그제서야 티켓을 끊으려고 한 것도,
이미 그놈이 안으로 들어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들어가서 그놈 잡으려고. 누구야, 그 새끼. 누구야, 그 새끼!
미래도 버리고 앞으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사람 공항까지 달려가게 만든 놈 누구야.
기분이 어땠을까. 죽어있는 영은수 옆에 네가 즐겨 쓰던 장미무늬 칼이 놓여져 있을 때,
누군가 영은수 죽이고 네 흉내 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너 엿먹이고 너 병신 만들려고 연쇄의 일환인 척 계략을 꾸민 걸 알았을 때.
잡아야지. 어떤 새끼인지 눈에 불을 켜고 잡을려고 했을 거야. 왜?
넌 이유 없이 사람 죽이는 사이코하고 스스로 다르다고 여기니까.
죄지은 사람들 전부 죽여도 된다는 과대망상. 그 사이코 새끼들보다 더한 새끼니까.
내사과라서 범인도 금방 알아낸 거지, 그렇지?
봐. 이놈이 범인이야. 넌 이놈 잡으러 간 거고. 왜 감싸 주는 건데?
도망치다가 잡혔다는 비난까지 들어가면서 왜 이 새끼 감싸주느라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
네가 여기서 이렇게 시간 낭비하는 사이에 이 새끼 또 멀리 도망가고 있어.